영화 자유만세는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한 대한민국에서 제작된 첫 번째 광복영화로, 해방의 감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영화는 제작사 고려영화협회와 사회사업 단체 향린원이 공동으로 제작하였으며, 최인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촬영은 일본 도호영화사 출신의 한형모가, 조명은 김성춘, 편집은 양주남이 맡았다.이 영화는 독립운동가 최한중이 감옥에서 탈출해 지하조직과 함께 무장봉기를 준비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1945년 8월 서울을 배경으로 한다.

원래는 광복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해방경축영화로 기획되었으나, 여러 사정으로 인해 개봉은 1946년 10월 22일 국제극장에서 이루어졌다. 개봉 이후 7만1556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당시 영화 시장에서 흥행작으로 기록되었다.

자유만세는 해방 이후 처음 제작된 광복영화로,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의의를 가지며 2010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그러나 원래 100분의 러닝타임을 가졌던 이 영화는 6·25전쟁 등을 거치면서 여러 이유로 필름이 반토막 나 현재 남아 있는 영상은 약 50분에 불과하다.

이 과정에서 영화에 등장하는 독은기의 출연 장면 등은 개봉 이후 삭제된 것으로 전해진다.자유만세는 광복 직후 한국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 했는지를 명확하게 드러내며, 한국영화사의 중요한 분기점을 형성하고 있다.

이를 통해 영화는 당시 사회의 정황과 민족의 염원을 담아낸다고 평가받고 있다. 8·15 광복 이후 다양한 항일영화가 만들어졌으며, 자유만세는 그 시작점을 알리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