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에 연루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이 13일 향년 94세로 사망했다. 정호용은 전두환과 노태우와 함께 육군사관학교 11기 동문으로, 신군부 핵심 5인 중 한 명으로 꼽혔다.
그는 1979년 12·12 쿠데타에 가담한 뒤 육군 특전사령관에 임명되어, 1980년 5월 18일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여러 차례 광주를 방문해 유혈 진압을 지시한 혐의로 1997년 징역 7년의 형을 확정받았다.정호용은 광주 재진입 작전 당시 병력을 동원하고 지휘한 의혹에 대해서도 추가로 고발당했으나 자신은 5·18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신군부의 마지막 생존자로 남아 있던 그는 사망으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 진상 규명 작업에 어려움을 더하게 됐다. 그의 사망 소식에 대해 5·18 유공자들은 정 전 국방부 장관이 책임을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고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해 강한 비판을 표했다.
정호용의 빈소는 수원 아주대학교 병원에 마련됐으며, 그는 1981년 대장으로 진급하고 1983년 육군참모총장직을 역임했다. 이후에는 전두환 정권에서 내무장관, 국방장관을 역임했으며, 1987년에는 대구에서 의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1996년 과거사 청산 과정에서 구속되고, 1997년에는 내란모의 및 내란목적살인 혐의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정호용은 자신이 광주 민주화운동 진압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속해서 주장했지만, 몇 차례의 조사 과정에서 그가 광주에서 상당 시간 머물렀던 사실이 드러났다.
조사위원회는 정호용이 광주에 머물며 군 지휘 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책임을 회피하며 대면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정호용 전 장관의 사망은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 규명을 위한 중요한 정보의 소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며, 과거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소환이 다시금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